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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or 카리브해/멕시코

멕시코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 데 리베라.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나는 결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현실을 그릴 뿐"이라며 초현실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자였으며, 
LGBT 인권 운동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멕시코 민중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으로 유명해졌으나,
 교통사고로 인한 신체적 불편과
남편의 문란한 사생활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현실주의초현실주의상징주의
멕시코의 전통 문화를 결합한 원시적이고 화려한 화풍으로 알려져 있다.
6살에 소아마비, 18살에 교통사고, 30여 차례의 수술,
죽음에까지 이른 병마, 남편의 끝없는 불륜, 세 차례의 유산불임 등
그녀의 삶에 반복된 고통과 절망은 수많은 작품의 오브제가 되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관찰하며 고통을 이겨냈고,
자신과 관련된 소재들을 즐겨 그렸기 때문에 그림 중 자화상이 많다.
143점의 회화 작품 중 1/3 가량인 55점이 자화상이다.

칼로는 완고한 공산주의자였으며,
디에고를 비롯한 공산주의 주역들과 함께 멕시코의 정신을 일으켜
과거 식민지의 잔재를 극복하려 하는 등의 정치적 활동과 문화적 계몽 등 여러 방면으로 애를 썼다.
멕시코 민중의 토속 예술을 되살리려 노력하기도 했다.

생전에는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정도로 여겨졌으며
유럽에서는 리베라보다 인지도가 조금 더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페미니즘이 부상하며 재조명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영화, 노래 등 다양한 매체에서 회자되며
기구한 생애, 독특한 캐릭터와 작품들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오늘날 프리다 칼로는 20세기 멕시코 예술과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되었다.

여성을 억압하는 전통과 관습을 극구 거부했다.
자신의 지성과 매력을 십분 활용하여 레프 트로츠키와도 연애를 했다는 설[7]이 있는데,
연애가 아니라 친구나 사제 관계였다는 말도 있다.[8] 이외에 조각가 노구치, 사진작가 니콜라스 머레이 등 나이와 성별에 구분없이 자유롭게 연애했다....나무위키 참고

프리다 칼로

주요 작품 파일:프리다 칼로 작품00.jpg 파일:프리다 칼로 작품01.jpg 본인의 자화상 부서진 기둥,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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