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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or지중해/프랑스

카르카손의 요새중의 요새 콩달 성(1)


프랑스 남부의 다른 도시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카르카손은

동화에 나오는 중세 마을 분위기를 이룬다.

 이중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유럽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성채도시이며,

전형적인 방어벽과 주거지,도로등 중세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B.C 2세기 이탈리아 반도와 대서양의 프랑스 남 서부지역인 아키텐 연결하는 와인 무역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카르카손 관광의 하일라이트인 콩달 성은

요새중의 요새로 12세기말에 세워진 이 성은 카르카손을 다스리던 영주가 살던 곳으로

외호와 5개의 탑,방어용 목조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르도에서 회교도시인 카르카손까지는 4시간을 이동한다.

유럽 최대 규모의 성채도시이며,프로방스 여행지의 첫 번째 도시인 카르카손이다.

고대 로마의 유적부터 중세 고성이 가득한 곳.

대서양과 지중해를 가르는

이베리아 반도의 피레네 산맥과 스페인 접경지역의 오드강이 흐르는 곳.

산티아고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네..

그림속에서나 있을것 같은 분위기의 콩달 성이 이렇게 우리와 만났다.

동화속에 공주님과 왕자님이 살고 있을것 같은 아기자기한 예쁜 성이고만...

근데 규모가 엄청나넴~



버스에서 내려 콩달 성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 공동묘지가 반갑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완 느낌이 많이 다르다.

살짝 이쁘기도 하넴~







카르카손이란 명칭이 붙은 것도 바로 이 조각상의 주인공인 카르카스(Carcass)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유인 즉 한때 이슬람(사라센)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고 카르카손이 있는

랑그독 지역도 지배하던 시기에 세력을 확장하던 프랑크 왕국이 바로 이 지역에서 이슬람(사라센)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


성안에 주둔하던 이슬람 왕국의 발라크 왕은 이미 사망하고 왕비인 Carcass가 왕을 대신해

이 성을 지켜내고 있었고 결국 5년이 넘도록 전쟁을 치루게 된다.


양쪽 모두 지쳐 있던 시기에 성안의 모든 식량이 떨어지게 되었고 성 안에는 결국 작은 돼지 한마리와

곡물이 조금 남은 상태가 되자, 기지를 발휘한 사라센의 왕비 카르카스(Carcass)가

마지막 남은 돼지에게 남은 곡물들을 모두 먹이고 성 밖으로 던지자 돼지의 배가 찢어지면서

방대한 곡물들이 돼지의 뱃속에서 나오자 샤를마뉴 대제는 결국 성안에 아직도 버틸 수 있는

많은 시량이 남아 있어 이 전쟁에서는 승산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군사들을 철수 시켰다고 한다.


이러면서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Carcass 왕비가 승리의 나팔(Sonne)을 불었다고 하는데 

나팔 소리를 들은 군사가 "Carcass가 Sonne를 부네" 라고 애기했던 것이 (Carcassonne)의

유래가 되었다는 재미 난 이야기가 있다..

 



카르카손느 왕비의 조각상


로마군이 이 지역을 점령한후

쌓은 성벽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안쪽 성벽)

그 후 이탈리아와 대서양의 아키텐지방(프랑스 남서부지역)연결하는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12세기에는

도시를 대표하는 콩달 성과 생나제르 대 성당이 세워지는 등 번창하게 된다.

이어 루이9세와 필리페 3세때에는

이웃 아라곤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바깥 성벽을 건설하기 시작해서 1285년에 완공하였다.





영어의 "시티"를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성벽안의 "시테"라고 하는 지역은,

성벽안의 번화한 곳이다.

과거에는 장인들이 생활용품이나 종교용품을 만들어 파는 공방으로 이용되었을 것이라 한다.



상점에는 중세 기사들과 십자군의 무기와 중세시대 물품들이 다양하다.



52개의 작은 탑과 이중으로 된 견고한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매력적인 성 중의 한 곳으로 꼽힌다.



장 피에르 크로 마이르비유(J.P. Cros -Mayrevieille) 흉상.

이 거대한 성채가

현존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사람의 공이 지대하다고..

1800년도  중반 이때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문화재라는 개념이 없었고

특히

 중부 이남 지역에 성이나 유적들은

방치가 되어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성이 많았다고...


심지어

성벽의 돌들을 떼어 내 건축 재료로 사용하거나 집을 짓는데 쓴 것도 모자라 

성안에 들어와 거주하기 까지 하였다니,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가히 짐작 할 수가 있다.


이후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성의 벽돌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피폐해져만 가는 성을 보다 못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사람이  바로 장피엘 크로마이르비유이다.


그는,

1850년 7월31일에 성과 성벽 파괴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 시키는데 성공한다.

당시, 역사유적 시찰위원회는

성벽을 구하기 위해 전쟁부 장관과 토의한 후,1852년 이를 위한 최초의 기금을 조성하게 되었다.

1853년부터 복원이 이루어졌으며...1910년에 복원사업이 완료되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 맛이 오~묘~하다는 메뉴다.ㅋ

후기를 보면 많은분들이 먹을수가 없다고 했던...ㅋ









정말로 식사를 다 할때까지 수포가 계속해서 올라왔던 스파클링 와인 리무...

맛있는 간장소스 샐러드를 곁들인 오리똥집요리..

이 지역이 이슬람 영향권에 있을때의 영양식,.

흰콩과 소세지...그리고 그 안엔 오리다리 하나가 떡허니 들어 있는데

겉 모양으로는 뚝배기에 담아 나온 우리나라 청국장처럼 보인다.

그런데 첫 맛은 좀 묘하다....ㅋ

그렇지만 먹을수록 그런데로...ㅋㅋㅋ


점심식사후 자유시간...

휭허니 나와서 성벽위 망로를 걸으며 성안과 성밖 풍경을 보고자,

망루로 오르는 길을 찾아 바쁘게 걷기 시작...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