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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or 인도양/이집트

7일차...왕가의 계곡-1.



살아있는 풀 한포기,생명체라고는 눈 씻고 봐도 보이질 않는

야트막한 모래 언덕에 둘러 쌓여있는

황량한 이 곳에

이집트의 역대 파라오가 묻혀 있었다는데...


62개의 무덤중에

61개 무덤은 이미 도굴되어 부장품은 하나도 볼 수 없는...

빈 무덤만 가득한 왕가의 계곡이다.


10개의 무덤을 관람할 수있는데...

그중, 티켓 한장으로 3개의 무덤을 선택해서 관람할수 있다하여

람세스4세, 6세,9세 무덤으로 정하고 

후끈후끈하는

 바람과 따가운 햇볕을 피해

람세스 4세 무덤부터 휘리릭~~ 






영국의 고고학자...하워드 카터가 머물던 곳...

***다음백과에서 퍼옴.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17세 때 영국이 후원한 이집트의 고고학 조사에 참여했다.


1893~99년 고대 테베에 있는

하트솁수트 여왕의 계단식 신전의 조각과 명문을 실측한 뒤,

고대유물 관계부서의 총감독으로 일했다.

 

1902년 왕들의 무덤 계곡에서

발굴을 감독하다가

하트솁수트 여왕과 투트모스 4세의 무덤을 발견했다.

 

1907년경

고대유물 수집가인 카나번 백작 5세로부터

왕의 계곡에서의

발굴을 감독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와 협력했다.


1922년 11월 4일

나중에 투탕카멘 왕의 무덤으로 밝혀진

유적의 첫 실마리를 발견했으며,

3일 뒤

봉해진 출입구에 도달했다.

이후 10년 동안 카터는

그 내용물을 밖으로 운반하는 일을 감독했는데,

현재 대부분의 유물은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카이로에선 BC2,000년경에 지상에 피라미드를 만들기 시작했고...

룩소르 왕가의 계곡에서는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난

BC1565년 경부터 땅굴을 파서 사자들의 안식처를 만들었다.


아마도

피라미드가 도굴되어 지는 것을 보고

후대의 왕들은

자신의 무덤을 땅굴속  깊은곳에다  숨기려 하지 않았을까?



왕가의 무덤은 수직으로 갱도를 파서 입구를 만들고

통로(산도)를 통하고...

그 안에 현실(자궁)을 만들었다.

20대 왕조의 첫번째... 람세스3세의 무덤이

가장 화려하고

하늘의 신이 부활을 상징하는 그림인 천궁도가 천장에 그려져 있다고... 

궁금함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입구에서 전기차를 타고 무덤까지 이동...

여태껏

추위에 고생을 했는데...

여기에 오니 차창밖의 태양빛이 예사롭질 않고,

후끈 달아 오른 공기가 장난이 아니다.

무덤안에서 사진을 찍다가 발각이 되면 벌금도 많이 내야하고

관리사무소까지 가서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하여

$18정도인 촬영티켓을 구입했다.


아부심벨에서도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는데...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바로

카메라를 달라해서 모니터로 확인을 하더라...헐~


일단,

한가해 보이는 람세스 4세 무덤부터...

경사진 통로를 걸어내려 가야한다.


햐~~~~~

드디어

이집트 왕의 무덤에 내가 들어 와 그렇게나 궁금했던 벽화도 보구...

쾌쾌하다던 무덤 공기도 마셔보궁...ㅋ


무덤안에는 왕이 죽고 난후의 사후세계를 그린 벽화와 종교의식

왕의 공덕과 은공...신하와 궁녀들,그리고 백성들의 모습등이 그려져 있다.

입구 좌우와 천장이

온통

이집트 상형문자 조각과 그림으로 가득하다.


아기자기하게 조각하고... 파스텔톤으로 채색한

반짝반짝 빛이나는

회랑길

양쪽 벽면이 넘나~ 아름다워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수천년의 세월이 지난 이 조각 그림 유물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방금 전 완성되어 진 듯한

이 느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상상초월!!!신기신기!!!기가막혀~

ㅋㅋㅋ~~~ 이냥반 표정이...!

에궁에궁...교과서에서 많이 봤눈뎅...ㅋ

경사진 회랑을 지나면 직사각형의 방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곳이...

미이라가 누워 있었던 곳 일게다.

가이드가 꼭 보고 나오라 했던

하늘의 신의 부활을 상징한다는 "천궁도"가 천정에 그려져 있다.


아항! 부활을 원했기에

현실과 통로를 자궁과 산도라 했구나... 


이 돌도 아스완에서 가져다 놓았을까?


천궁도를 다시한번...찰칵!


적과의 싸움에 나선

병사들의 진군 모습과 바다를 건너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병사들...

파라오 생존시

주요 치적을 그림에 담았으며

특히

 전쟁에서의 승리와 영토 확장을 통한 세력 확산에 대한 벽화를 남겼다고...














멀리 보이는 투탕카멘의 무덤...

투트모스1세가 이 곳에 무덤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

500여년 동안 이 곳에서 이어졌다.

이 투탕카멘(고대이집트 제18왕조의 제 12대왕)의 무덤 한 곳만이

도굴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린 나이에 죽은

파라오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만으로도

카이로 박물관 2층을 뒤 덮을 정도라고...

마지막

62번째로 발견된 무덤..

안에는 별 볼만한 것이 없다하여 들어 가질 않았다...

머...

중요한건 박물관에서 다 보았으니까...ㅋ

재빨리

햇살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에 다음 무덤으로...ㅋㅋㅋ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햇볕이 얼마나 뜨거운지

아쉬움도 잠깐...


*****나무위키에서 퍼 온글...


 1922년 11월 4일에 왕가의 계곡에서 엄청난 발견이 있었다.

투탕카멘의 무덤(KV62)이

거의 도굴되지 않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다만 여기서 '거의'라고 한 이유는

투탕카멘의 무덤도 도굴당한 흔적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20] 입구에 봉인을 3개 해놓았는데,

2번째 봉인은 발굴 당시에 이미 뚫려있던 것이다.

투탕카멘 왕이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아(!) 도굴꾼이 침입했는데,

무덤을 지키던 경비대에 걸려 미수로 끝났으며,

마야라는 관리와 사제들이 다시 무덤을 봉인했다는 기록이 전해져온다.


[21] 여러 유물에서 도굴의 흔적이 남아있고 방들이 대체로 어지러져 있었지만,

 그 정도가 타 파라오들의 무덤과 비교할 수준이 못 된다.


2번의 도굴 시도에서 도굴꾼들은

가벼운 귀금속들과 귀한 연고 정도를 가지고 간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무덤에서 발견된 석상에서는 귀금속이 모두 벗겨져 사라진 채 발견되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사람들은

영국의 하워드 카터와

그의 재정 후원자,

카나본 경 (George Edward Stanhope Molyneux Herbert, 5th Earl of Carnarvon ,1866~1923)이다.


[22] 이 무덤을 발굴하기 전에도

하워드 카터는 카나본경의 후원을 받아

다수의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이미 도굴된 무덤들 뿐이라 큰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카터는

 인근 무덤에서

 투탕카멘의 장례식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유물 조각들을 찾아내어,

투탕카멘의 존재와 더불어

그의 무덤이 왕가의 계곡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전에 발굴을 하던

시어도어 데이비스는

이제 왕가의 계곡에는 무덤이 없다!라고 선언하고 발굴권을 넘겼고,

카터는 이번이 마지막 발굴이라는 부탁을 해

카나본 경에게 간신히 자금을 끌어올 수 있었다.


그 마지막 발굴이

세기적인 발굴이 된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투탄카멘의 무덤을 발굴하여 이집트의 아이콘이 되었으니 

 하워드 카터경에게 감사해야 할것이다.

카터는 람세스 2세와

 람세스 6세 무덤 사이에 있던 곳에 주목했는데

이 곳은 수상했지만

그동안 발굴이 없었던 곳이었다.

이 자리는 원래 람세스 6세 무덤을 만들던

노동자들이 기거하던 오두막이 있던 곳이었는데

카터는 이 곳을 파내려 가다가

 마침내

무덤으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했다.


계단을 발견한 카터는

도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동시에

 내부에 뭐가 있을까 호기심도 들었지만

5년동안 막대한 돈을 투자하면서 자신을 믿고 후원해준 후원자인

카나본 경과 같이 봐야한다는 마음으로 꾹 참고

그 날,

카이로로 가서 지병으로 본가에서 요양하고 있던

 카나본경에게 전보를 치기 위해 한 걸음에 달려가 전보를 보냈다.


"마침내

왕가의 계곡에서 엄청난 발견을 이루어 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아직까지 봉인이 남아있는 무덤입니다.

카나본 경께서 도착하실 때까지 재봉인 해 놓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1922년 11월 6일,

하워드 카터가 보낸 전보를 받아든 카나본 경은

서둘러 이집트로 갈 준비를 했다.

비록 카나본 경은

오랫동안 안고 있던 지병으로 인해 오늘 내일 하는 상태였지만,

봉인이 멀쩡한 무덤을 발견했다는 기쁜 소식에,

아픈 몸을 이끌고 그의 딸과 함께 이집트로 당시 교통으로 꽤 빠른 3주만에 이집트로 왔다.[23]

당시 카터는

그가 발견한 것이 진짜로 파라오의 무덤인지,

아니면

단순한 부장물 창고인지 확신하지 못 하는 상태였는데,

 비록 후원자가 있는 상태에서 봉인을 열기 위해 문은 열지 못했지만,

지하로 통하는 통로를 보고

무덤일 것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마침내,

 1922년 11월 26일,

영국에서 날아온 카나본 경과 그의 딸,

그리고 발굴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카터는 끌을 이용해 통로의 봉인에 작은 구멍을 뚫었고,

그 구멍에 램프를 집어 넣고 수천 년 만에 열리는 무덤의 안을 본 순간...

"뭔가 보이나? (Can you see anything?)" (카나본 경)

"네, 아주 아름다운 것들이 보입니다.... (Yes, Wonderful things....)" (카터)


과연

 하워드 카터가 말한 대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는

사진에서 보는 화려한 황금 마스크와

투탕카멘의 미이라를 비롯한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었고,

덤으로 투탕카멘의 저주라는 도시전설까지 떠돌았다.

고작 9년을 재위(在位)한

별 볼 일 없는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은

그 많은 이집트 파라오를 전부 다 제치고,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