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신인 시바가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를 얻고 나서 기쁨에겨워 춤추는 모습을 나타낸 나트라스 조각상....
남인도는 데칸 중심의 지역과 그 이남의 타밀 지역으로 나뉜다.
남인도 지역은 마우리야와 굽타왕조 시대에도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채 어느 정도 독립된 권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마우리야 왕조의 인도 통일로 북인도의 문화가 어느 정도 유입은 되었을지라도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독자적인 나름대로 고도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 경향은 현재에도 지속되는 편이다..
드라비다인의 문화라고 지칭되는 남인도 문명은 기원전 1200년경에 이미 바다를 통해 매소포타미아, 이집트, 팔레스틴 지역등과 교역을 하였고,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 왕의 석주에 나타난 비문을 통해 남인도 지역이 처음으로 북쪽의 아리아인 문명과 접촉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세기경에는 로마제국과도 독자적으로 해상무역을 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풍요로운 상태였다.
주민은 대부분 아리아인이 아닌 드라비다(타밀)인이었다.
그들은 주로 토템적인 씨족체제를 구성하고 있었으며 오랫동안 토템의 상징을 숭배했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적이고 독립적인 문화는, 마우리야 왕조의 통일제국 이후 점차 아리아인의 문화에 영행을 받았고,
그들의 고유 종교는 힌두이즘보다 아쇼카 왕의 불교전파로 불교와 자이나교의 영향을 먼저 받았다.
타밀 중심의 남인도 지역이 인도 역사상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략 기원전 2세기경으로 로마제국과의 무역을 통해 촐라,체라,판드야의 세 왕국이
형성되었는데, 이 세 왕조는 끊임없이 서로간의 세력다툼을 벌였고,전쟁으로 국력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풍부한 자연의 산물과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였다.
농업으로 벼와 사탕수수 등을 경작했으며, 과일, 후추등도 풍부하게 산출되었다.
세왕국의 군대는 초보적인 수준이었으며 특이한 것은 코끼리가 전쟁에서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으며, 말은 바다를 통해 수입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인 타밀어를 사용했다...
인천공항서 3시간 45분을 날아 홍콩 도착...
대략 4시간여를 환승대기...
그런데 첸나이행 비행기가 2시간 연착을 한단다...ㅠㅠ
홍콩에서 5시간30분을 날아 첸나이 도착... 예정 시간이 00시20분인데 아마도 새벽2시30분 정도에 첸나이 도착한 듯...
남인도 동쪽에 위치한 해안도시인 첸나이는 뉴델리와 뭄바이,콜카타와 함께 인도의 4대 도시중 하나이다...
첸나이 총영사관이 쓴 글을 인용하면...
가끔 길에서 ‘아빠, 아빠’ 부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뒤돌아보면
현지 소녀 아이가 내가 아닌 자기 아빠를 부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엄마∼’ 하며 칭얼대는 아이들 모습이 마냥 정겹게 느껴진다.
타밀어가 한국말과 공통된 것이 많다는 것은 고종의 신임을 받아 헤이그 밀사 파견을 도운,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헐버트 선교사가 1905년 주장했다.
논밭의 풀을 똑같이 풀이라 하고, ‘이리 와’는 ‘잉게 와’라고 해 발음이 비슷하다.
남인도 동해안의 타밀나두 사람들은 우리하고 닮은 게 많다.
북인도와 달리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이곳의 농부들이
모내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한국의 농촌이 아닌가 하고 착각이 되기도 한다.
약과, 송편과 흡사한 음식을 먹고 자치기 놀이를 하며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을 친다.
댕기 머리나 쪽 찐 머리를 한 여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저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현시점에 있어서 타밀나두는
자동차 및 전자를 중심으로 인도 내 한국 제조업의 최대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첸나이 반경 30㎞ 내에 우리 기업이 200개 이상 자리하고 있다.
길에 지나가는 승용차 열 대 중 두 대꼴로 한국 브랜드를 만나게 되고
TV, 에어컨, 냉장고에서 과자류에 이르기까지 한국기업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4000여 명의 한인사회는 가장 큰 외국인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인도 경제의 부상과 함께 우리의 활동범위나 규모도 함께 커갈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퉁퉁 부은 눈으로 나와서,
한국사람들의 가족 간의 정서가 어쩜 그렇게 타밀 사람들하고 닮았느냐고 말하는 이들을 대하면서,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게 그냥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
역시나 이번 여행도 현지가이드 복이...
왠만한 한국 사람 뺨치게 우리나라의 모든 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거의 반절은 우리나라 사람같은...
삼겹살과 특히 우리나라 치킨에 무한 애정을 표현하는 수밋 꾸마르를 만나 우리의 전용 차량으로 이동 중...
늦은 시각에 (아니???이른시각ㅋ)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잠자리에 누우니
예상했던 대로 시트며 이불이 눅눅한 정도가...ㅠㅠ
가뜩이나 습한 곳인데 태풍이 지나가고 거의 일주일째 비를 퍼 부었다고 하니...ㅠㅠㅠ
으쨋든 침대에 누워서 눅눅함을 느끼는 것인지... 마는지......바로 잠에 골아 떨어져 버렸엉...ㅋㅋㅋ
첫번째 일정지인 정부 박물관으로...
첸나이는 도시전체가 거의 물에 잠긴 상태...
아니...
tmb에 이어 왜 이러나???
그동안 가는 곳 마다 좋은날씨에 호강하고 다녔는데...
더군다나 남인도는 하수도 시설이 전무라 비가 오면 그대로 물난리가 나는 것 같다...
박물관에 도착을 했는데도 세차게 내리는 빗방울로 잠시 차에서 대기....허허
잠시후...언제 그랬냐는 듯 잠시 소강상태...
이 곳이 박물관 입구...군데군데 물이 고여 이동하기에 좀 불편하다...
1851년 개관해 인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 하는데...
우리가 바다라보는 박물관의 겉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이런 곳에 ‘특별한 유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될 정도..
하지만 이런 기우는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 마자 금세 사라지고 이 중요한 유물의 보관 상태가 많이 아쉬워 걱정이 되기도...
총42개의 갤러리가 있는데 우리가 들어간 첫번째 갤러리는 고고학 전시실이다.
촐라왕조, 비자야나가르(Vijayanagar), 호이살라(Hoysala), 짤루까(Chalukya) 왕조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된 곳이다.
비슷비슷한 유물들이라 구분이 어려웠는데,
겨우...
힌두교, 자인교, 불교의 유물들 이란 것을 가이드 수밋의 설명을 들어 어렴푸시 알 수 있었다.
후기 촐라 시대(1,100~1,3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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