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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실크로드

돈황...3대 석굴중의 하나이며 불교예술의 정화인 막고굴...


퍼온글...

돈황은 중국땅의 서쪽 끝이다.( 명사산 동쪽 끝단)

돈황에서 더 서쪽으로 가면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타클라마칸은 ‘돌아올 수 없는 땅’이란 뜻이다.

실크로드의 상인들과 구법승들은 중국의 오랜 수도였던 장안(지금의 시안)에서

란저우, 돈황을 거쳐 사막을 건넌 뒤 멀리 인도와 로마까지 갔다.

그건 동·서양 문명을 잇는 거대한 징검다리였다. 불교 문명 역시 이 비단길을 따라 동서를 오갔다.

버스는 시내에서 20㎞ 떨어진 돈황의 막고굴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칼바람이 뺨을 때렸다.

현지인 가이드는 “여름에는 섭씨 44도, 겨울에는 영하 24도까지 떨어진다”고 했다.

막고굴 입구로 들어서자 사막의 모래와 자갈이 뭉쳐서 만든 높다란 절벽이 나타났다.

그곳에 492개의 동굴이 있었다.

1600년 전부터 하나씩 생겨난 거대한 석굴 사원이다. 동

굴마다 문이 잠겨져 있었고,

막고굴 안내인이 열쇠를 들고 다니며 안내했다.

4세기 북위 시대에 만든 동굴에 들어섰다.

캄캄했다.

손전등을 비추자 마술처럼 벽화가 드러났다.

사방의 벽에도, 천장에도,

바닥에도 연꽃 무늬와 부처상, 비천상 등이 즐비했다.

정면에는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된 불상이 앉아 있었다.

동굴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미술관이었다.

북위 시대부터 수·당·송·원·명·청나라까지 무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성된 동굴들이 사막의 절벽에 펼쳐져 있었다.























관람을 하다보니 여러곳을 보수하는 중이었는데...

보다시피 외부벽면 전체를  시멘트인 듯한 자제로 마감을 해 놓았다..







청나라 말기인 1900년 막고굴의 도사 왕원록이

청리동굴에서 모래가 흘러 내리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이것이 시초가 되어 16굴 북벽을 발견하였다.


그 안에서는 진귀한 직물과 자수품들... 특히 5만여권의 돈황문서가  나온것으로 유명하다.

건조한 사막지역이라 이러한 유물들은 매우 완전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었다.

영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 나라들이 탐사 작업후에 이곳을 발굴하게 되었고,

그후, 많은 유물들이 이들 국가의 박물관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므로써

막고굴의 진귀한 유물들은 전세계로 흩어지게 되며... 돈황의 휘황찬란한  불교유물들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이실로 되어 있는 16호는 "장경동"인 17호굴을 가진것으로 유명하다.

굴입구 좌측에 왕원록의 제자들이 세운 주수공덕비가 있는데...

이는...왕원록도사가 17호 석굴인 "장경동"에서 나온

돈황문서를 팔아서 챙긴 돈으로 굴을 개수하고... 3층 누각으로 된 전실을 건축한 공덕을 기리는것이라고 한다...헐~


현지 가이드는 여기에 등장하는 왕원록과 장경동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진을 찍느라 중간부터 설명을 듣기 시작한 나는  "장경동"이 사람이름인줄 알았다눈....쿡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 1908년 3월 프랑스 탐험가였던 펠리오가 막고굴에서 발견...

신라시대 승려 혜초가 지은 인도여행기이며 원래는 3권이었던 듯하나 현존본은 약본이며 앞뒤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왕오천축국전에있는 오언율시는 혜초스님이 고향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토록 고국을 그리워했으면서도 정작 스님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2만KM의 만행을 마치고 당나라에서 인도출신의 밀교승인 금강지의 제자가 되었다.

고국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오언율시 같은 시심으로 마음을 달래신듯하다...                



현재 왕오천축국전은 파리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









막고굴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



사주야시장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