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사해 해안에 있는
배 모양의 구릉을 이용한 자연 요새지로,
이스라엘 왕국의 파멸,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군과의 전쟁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곳곳에 공격 램프와 같은 로마 포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최후의 항전지,
메마른 황야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바위 산 위에서
사해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사다 유적지는 장엄하고 아름답다.
사방이 깍아지른 절벽인데
꼭대기는 평평한 메사(mesa)지형 위에 자리잡아 천혜의 "요새"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나공불락일 것 같은 천연 요새도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 군대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곳은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
유대 저항군들이 마지막까지 로마군에 항전했던 곳이다.
풍부한 물과 경사로를 타고 진격해오는 로마군에 의해 요새가 함락되기 직전
집단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당시 자결한 유대인의 수는 967명이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한 뒤로
1000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 왕국이 사라지고,
이후 2000년 동안,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게 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을 비감하게 장식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의 자존심이자 긍지가 되는
이런 이유로.... 구체적인 장소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랜 전 부터 마사다 항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존심이자 긍지요...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20세기 중반 현장이 발굴된 뒤에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7일차.
암만-마사다-사해-베들레헴.
암만에서 알렌비 국경을 통과해서 이스라엘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던 폭 2km의 너른 요단강이 지금은 이게 요단강인가?하고 스쳐지나갈 정도로
폭 좁은 실 개천 정도?로 변해져 있었다.
예루살렘 가는 길에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왔던 엔게디 광야를 지나고
유대광야에서 방문하는 마사다.
첫날인가? 둘쨋날인가?
여행책자 커버 사진으로 만나본 마사다는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일정지.
사실...
떠나기 전...
일정지 정보는 조금씩 접하고 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바쁘게 내 돌아치다 떠나느라 그랬는지... 마사다를 요르단의 마다바와 혼동을 했는지...ㅋ
마사다에 대해서만은
특별히 기억해서 알고 있는것이 없는 상태여서
이스라엘 첫번째 가이드가 마사다에 대해서 살짤 설명을 하였을때
어???마사다가 그런곳이었어???했다.
사막과도 같은 황량한 광야를 달리는 동안...나의 궁금증은 증폭이 되어만 가고...
드디어... 궁금해하던 마사다가 유대 광야 한 가운데서 내 눈앞에 떡!허니 버티고 있는거다...
헐~
기이하데이...
로마에 대항한 유대인 최후의 항쟁지이자 천연 성벽 요새인 마사다 국립공원 도착.
마사다는 로마군에게 점령 당하기 직전에
이 곳에서 영광스럽게 전원 자결이라는 선택을 하여... 명예안고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곳이 이스라엘 민족의 긍지와 명예가 담긴 숭고한 절벽위의 요새이지만,
최근에 와서야 존재가 알려져고,
이스라엘 역사중에서도 가장 비참하지만,
마사다로 상징되는 불굴의 저항 정신은 유대인들의 유전 인자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으로, 사해지역 서쪽 해변에 위치.
주위의 유대광야의 산들과는 고립된,
사해바다를 기준으로 높이 470m의 난공불락의 절벽 요새 성채.
마사다를 거슬러 올라가려면 약 470m나 되는 절벽같은 길을 올라 가야하고,
그나마 좀 괜찮다 싶은 서쪽의 90m는
절벽인지라 사람이 오르는 것 조차가 불가능한 곳이다.
마사다에 대한 영상물 한편을 감상한 다음 본격적인 마사다 관람이 시작된다.
헤롯대왕은
사해 근처에 있는 "마사다" 고원위에 거대한 12개의 물 저장고 시설과 물 공급 시스템.
그리고 70개의 방과 30개의 탑.
식료품과 무기를 저장한 7개의 차고와 4개의 성문을 만들었다.
기원전 37년~31년
자신의 악정으로 인한 반란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피난 요새겸 궁전으로 활용하였던, 헤롯대왕의 3층 호화 궁전은
한 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도록 북쪽 절벽에 건설되었고
냉수와 온수를 쓸 수 있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었다니 놀라울 일이다.
헤롯대왕은
로마에서 도망나와 이곳에 안착했고
예수 탄생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 일대의 두살 이하 남자 아이를 모조리 학살하라 명했던 잔혹한 왕이었다.
노을속에 물든 마사다에서 내려다 본 유대광야와 사해의 사진.
자...그럼 올라가 보자구~
케이블 카를 타고 마사다 정상으로 이동
도망자들이 와서 피할 수 있는곳...사막과도 같은 유대광야.
높이 470m 위에 조성이 된 절벽위의 도시는 1.3km가 되는 4m높이의 성벽에 쌓여 있어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것으로도 이 요새를 점령하려는 군사들의 사기를 꺽어 놓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이 요새로 올라가는 "뱀 길"은
이 요새가 접근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사다는
이스라엘 학생들의 수학 여행 코스이며,
기초 훈련을 마친 군인들의 임관식이 행하여 지는 필수 코스이다.
이 학생들과 군인들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40도가 넘을때가 다반사인... 그늘 한 점 찾을 수 없는 이 뱀 길을
3시간여를 두발로 걸어 바위산을 오르며
"다시는 마사다가 무너지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한다고 한다고 한다.
비가 내리면
이렇게 만들어 놓은 수로를 타고 빗물이 흘러 내려가 물 저장고에 자동 저장이 된다.
기가막히게 만들어 놓은 수로...그 밑에 관광객.
방탄벽 사이로 난 뱀 문으로 들어간다.
마사다에 오르는 길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으면 3시간 정도 뱀 길을 올라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 곳으로 이끄는지 올라 본 사람만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로마군에 항거하던 이스라엘 인들의 전원 자결"..
바로 그 장소에 우리가 올랐다.
우리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온 지점을 가리키는 가이드.
맞은편인 서쪽 바로 아랫쪽엔
피라미드와 같은 세모 모양이 살짝 보이는데
이곳이 로마군이 3년여의 시간을 허비하며, 이스라엘 노예들을 동원해 흙으로 언덕을 쌓고,
그 위에 망루를 짓고 쳐 들어 온 지점이라고...그 옆이 서쪽 궁전 터.
왼쪽부분엔 뱀 길을 올라 뱀 문으로 이르는 길이 표시되어 있다.
엄청난 규모의 곡식 저장고들과 사우나 시설... 그리고 헤롯대왕의 궁전이 보인다.
설명을 듣고 나서 서쪽 궁전터를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아 본다.
흔적만 남아있는 교회터.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내부...욕조가 있었고, 바닥엔 모자이크를 해 놓았다.
검정색으로 선을 그여 구분한 것은 발굴 당시 유물이고
위는 발굴후에 새로 축조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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