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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아시아/스리랑카

플론나루와..왕궁 터.

 

파라크라마바후 (Parakramabahu, 1153~1186) 왕은 플로나루와에 3중 성벽을 쌓고..

7층짜리 왕궁을 건축하고 군신의 궁전(Place of God Sakra)라고 이름 지었다.

왕궁 부근에는

1000여 채의 공공건물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벽돌로 쌓은 기초만 넒게 펼쳐있다고 한다..

 

 

 

어스름한  오후 늦은 시간에 찾아간 왕궁 터...

사진은 좀 어둠 침침하지만,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의 눈으로 찬찬히 돌아 보니

관람을 하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흥망성쇠의 진리를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좁은 소견이지만 여러갈래의 생각이 뒤 엉켜.. 세월의 무상함에 착찹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 옛날의 영광이 궁금하여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곳저곳을 유심히  바라다 보지만...

궁금증은 더 해가고...

 

그 옛날 수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속에 탄생한

이렇게나 넓고.. 웅장한.. 왕궁안에서 도대체 어떤 많은일들이 생겨나고 ...없어지고...했을까???

폴론나루와(Polonnaruwa)는

200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스리랑카 유일의 왕조 싱할라 왕조의 두 번째 수도이다.

1070년경 남인도에서 들어온 촐라(Chola) 왕조를 격퇴한 위자야바후1세(Vijayabahu I)는

수도를 아누라다푸라에서 남동쪽에 위치한 이곳 폴론나루와로 옮겼다..

수도를 옮긴 왕은 불교를 통해 나라의 부흥을 꽤했고,

할아버지의 뜻을 이은 손자 파라크라마바후 1세는 수많은 사원과 거대한 저수지 등을 건립해

폴론나루와를 당시 세계적인 불교의 중심 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폴론나루와는 아누라다푸라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도시가 그대로 유적으로 남아있다.

 

 

 

궁전은 1층의 대홀이 200 여평 정도이며 처음에는 7층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2충만 남아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바라다보니 그 옛날의 웅장함을 감히 짐작만 할 뿐이다...

수세식 화장실...

 

 

 

 

 

 

 

 

 

 

 

 

 

여러개의 돌기둥에는

대신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대신들은 그 자리에 앉아 회의를 했다고...

사자가 새겨져 있는 곳이 옥좌이고...

왕의 오른쪽부터 황태자,장군,수상과 각료.재무대신,서기 순으로 이어진다.

옥좌의 좌측에서 수상의 반대쪽은 지사,그 뒤에 상인과 귀족의 자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