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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or지중해/프랑스

노르망디 천공의 성 몽생미셸(2)









길 모퉁이 자릴하고 잇는 성 베드로 성당.

입구엔 프랑스의 국민영웅 잔다크의 동상이 우릴 마지하고 있다.




전체 일정중에 가장 힘든 날이라며 400개의 계단을 오른다했다.




몽생미셸 최 정상부의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성 미카엘 대천사 동상(32m)

성 미카엘은

신약성경 요한 묵시록에서

악마의 상징인 용과 맞서 싸워 무찌르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내세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속에서 살아가던 중세인들에게 성 미카엘은

최후의 심판일에

죽은자를 인도하고 인간의 영혼을 저울에 다는 인물이다.


 서쪽 테라스에서...

성당의 서쪽 테라스는

수도원 성당의 소박한 안뜰과 

18세기에 화재로 파괴된 본당의 첫 세기둥 사이의 거리로 구성되며,

고전 양식의 정면부는 1780년에 복원되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캉칼바위부터 브르타뉴 해안과 동쪽으로 노르망디 절벽까지 만을 한 눈에 조망 할 수있다.

처음에는 이 곳 전체가 수도원이었으나

18세기,벼락으로 인해 무너지고,소실된 부분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축소되었다고...


뒤를 돌아 바라다보면

1897년에 세워진 신 고딕 양식의 첨탑과 그 위에 성 미카엘의 금빛 동상이 있는 멋진 풍광을 감상 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서쪽 방향인 브레타뉴 지방의 풍광~

19세기 이전...

몽생미셸로 이어지는 도로가 건설되지 않았을때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위태위태 갯뻘을 밟으며 걸어서 오가던 곳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이었기 때분에...조수간만의 차가 큰 이 곳의 만조 시간을 미리 알 수 없어,

순전히 자신들의 운과 신의 뜻에 맡기며

밀려 들어오는 바닷물로 인한 기적을 체험하곤 했던 곳이라고...

멋지다.....!







이 문을 통해 들어가자 신비롭게 아름답고,환상적인 공간이 우리앞에 나타나다.

옥상에 있는 정원 클로이스터.

사방은 막혀있고 회당의 위쪽(하늘)만 열려 있는 수도사들의 명상 공간이자 천국을 상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


옥상 공간을 이렇게나 아름답게 꾸며 놓다니...

수도원 내부는 가는 곳마다 이렇게 휭~하다.

백년 전쟁을 겪은 몽생미셸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바로 그 사건인

프랑스 대혁명(1789~1794년)에 또 한번의 풍파를 맞게 되어

왕실과 귀족,그리고 성직자들의 방탕함과 부폐함에 들고 일어난 민중들이

몽생미셸안의 프레스코화등 모든 화려한 장식물들을 소실시키고,

파괴된 바스티유 감옥대신에

죄수들의 감옥으로 대체해 버렸다고...


관광객들이 모여있는 남쪽벽에 있는 설교단에서

한명의 수도사가 성경을 읽는 가운데 조용히 식사를 하던 구내식당을 관람하고

 바로 밑에 있는 순례자의 방으로 계단을 통해 이동한다.


순례자의 방인 이 방은 왕과 귀족들을 맞이 하는데 쓰였다.

순례자의 방 밑으론 지하 기도실과 수도사들의 유골 안치소가  있다.

지하기도실...

블로그를 정리하며 이곳이 기도실이지만...부근에 유골 안치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곳을  관람할땐 괜스레 으스스해서 얼른 사진을 찍고 나온 기억이....ㅋ

기도실의 훼손된 프레스코화...

거중기...

수도사들만이 생활할때는 일반적인 길로 물자를 수송해도 충분했으나

 1,400여명의 죄수를 수용하기도 했기에

거중기를 설치하고 6명의 죄수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서

한번에 약2톤의 물자를 끌어 올렸다고...

수도원 한구석에는 이 섬의 암석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죽은자를 위한 예배실인 생테티엔 예배당.

이것으로 내부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내려오다 만난 사진 한장!ㅋㅋㅋ

넘 신비롭고 멋지지?















한때는...

 1,800여명이 기거하며 번성하기도 했으나,

1791년 혁명군에 의해 감옥으로 사용되다가,1863년 마침내 폐쇠되기에 이르렀던 몽생미셸.

한동안 철저하게 버림을 받았던 곳이지만,

빅토르 위고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복원을 위한 운동을 하여

다행이도,

1874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수도원)과 자연유산(갯펄)에 등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