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방앗간이 있던 자리에
13세기 마크 가문이 성을 짓기 시작했으나
미처 완공하지 못하고 파산한 후,
소금이나 와인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1515년 토마스 보이에와 그의 부인 카트린느 브리세네가 이곳을 사들여서
원래 있던 성채와 제분소를
완전히 없애 버리고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 건축한 것이 지금 남아 있는 성이다.
한때,
앙리 2세가 이 성을 애첩인 디안 드 푸아티에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앙리 2세의 본처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디안을 몰아내고 성의 주인이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여러 세기 동안 앙리 3세의 부인 루이즈 드 로렌,
조카 프랑수아즈 드 로렌 보데몽,
클로드 뒤펭 등 여성들이 성의 주인이 된 적이 많았기 때문에,
유난히 여성스러운 성으로 가꾸어졌다.
그래서 이 성을 ‘여섯 여인의 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의 내부에는
디안의 침실과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침실이 있어
안주인들의 특성에 맞게 복원된 성의 내부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입구 쪽에 있는 정원에는
처음 만들어진 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마크 타워(Tour des Marques)에는
가문의 상징인 독수리와 전설적인 괴물로 장식된 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다음백과...
프랑스의 전형적인 아침 풍경을 감상하며 고성관광의 거점도시 루아르 지방으로 달린다.
루아르 강은 동,서를 가로 지르며 총 길이 1,020km로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이다.
이 강 유역애는 계곡과 풍부한 숲이 펼쳐지며,
기후가 온난하여 와인 산지로도 유명하다.
강 중류 곳곳에는 포도밭과 고성들이 있어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
이탈리아 영화"라스트 콘서트"를 감상하며 이동...
몽생미셸,생말로,파리를 배경으로 만든 병에 걸린 여자와 손가락이 잘린 피아니스트의 사랑이야기.
루아르 강의 지류인 셰르 강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성은 귀족부인들이 사랑했던 곳 답게
강 위에 백조가 떠 있는 듯 한 우아한 외관과 잘 꾸며진 정원이 특징이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까트린 드 메디치와 디안느 드 푸와티에가 만들고 가꾸던
아름다운 정원이 매우 인상적이다.
성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
깔끔하고 예쁜 디자인의 쉬농소 성 그릇에 담아 나온 대구살 요리와...
곱게 간 고기에 염소 치즈를 넣어서 만든 후식과 함께 마신 레드와인
루아르 지역에 있는 50여개의 성 중에서
크고 웅장한 성은 아니지만,가장 아름답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쉬농소 성이 나타난다.
정갈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었던 정원.
디안 드 푸아티에의 정원.
까트린 드 메디시스 정원.
디안 드 푸아티에의 정원.
그들의 수호성인인
까트린 성인과 토마스 성인의 모습이 세겨진 벽 장식의 근위병 실.
루이스 뒤팡부인의 기지로 장작더미를 쌓아 놓아 지킨 예배당...
푸른베일의 동정녀.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매장.
아! 이 방이다.....
앙리2세의 연인 디안 드 푸아티에의 침실.
푸랑수아1세는 즉위 하자마자 이탈리아 원정을 꽤해 밀라노를 점령하고,
메디치 가문의 까트린 드 메디시스를 데리고 와 자기의 아들 앙리2세와 결혼을 시킨다.
그후,
합수부르크가의 카롤로스 5세와의 전쟁에서 참패하여 포로가 되었을때
아들들을 인질로 두고 풀려났으니,
그 인질중의 하나가 앙리2세이다.
스페인에서 인질로 풀려나 돌아 온 앙리2세의 나이는 12세,
그때 그를 품에 안아 돌보아 준
여인이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20세 연상의 디안 드 푸아티에.
프랑수아 1세에 이어
1547년 왕위에 오른 앙리2세는 장삿꾼의 딸 까트린을 멀리하고
지적이며, 정치적이었던... 디안을 자신의 평생 친구로,연인으로 지냈다.
"달의 여신 다이아나"로 비유될 정도로 절세의 미인이었던 디안은,
앙리 2세의 인생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며,
왕비에 버금가는 정치 권력을 누렸고,
1553년에는 왕비 다음 서열인 발렝티누아 공작부인의 작위를 받기도 한다.
앙리 2세는
디안을 위해서 아네 성을 지었고,
왕실 소유의 아름다운 쉬농소 성도 디안에게 사랑의 증표로 선물한 것이며,
왕실보다 이곳에서 디안과 머무르며 25년을 그녀와 함께 보냈다.
앙리 2세가 죽자
왕비 까트린 드 메디치가 디안으로부터 이 성을 빼앗고
그 녀를 쇼몽 성으로 쫒아 버렸다.
반면,
앙리2세의 왕비인 까트린 메디시스에게 디안의 존재는 삶의 고통이요, 시련이었다.
까트린은 이탈리아 메디치가문의 자손으로 1519년에 태어나 출생 직후 부모를 잃고
어린시절부터 시련속에서 살았다.
결혼후 그녀의 오랜 고통은 1559년 앙리가 마상시합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자마자
까트린이 지배권을 장악하고
디안이 왕을 만나는 것을 제한시키며 막을 내리게 된다.
앙리2세가 부상으로
생사의 고통에 시달리는 10여일 동안 왕을 간절히 보고싶어 한 디안을
못 보게 하는것으로 까트린은 복수의 칼을 빼 들었고,
왕이 디안에게 선물했던 물건들의 목록을 작성케해,디안에게 모든것을 반환받았다.
또 왕이 죽었을때에는
장례식에도 초청하지 않았다.
이어 디안을 쉬농소 성에서 추방하고
초라한 쇼몽 성에 머물게 한 후 자신이 쉬농소 성에서 살았다.
디안은 쇼몽에 잠시 머물다
아네에 있던 자신의 성에서
외부와 일의 접촉이 없이 조용하게 말년을 보내다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까트린은 죽을때
이 성을 앙리3세의 미망인 루이즈 로렌에게 소유권을 넘겨 주었고,
다시 앙리4세가 그의 연인 가브리엘 데스트레에게 주었다.
후에 ,
많은 예술가들과 친목이 두터웠던 뒤팡부인이 18세기에 성주가 되었고,
존경을 받던 뒤팡부인의 명성 덕으로 프랑스 대혁명때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성의 마지막 여 주인은 플루즈부인으로...
그 녀는 세월에 낡아가는 쉬농소 성을 복원하고, 관리를 해 지금의 쉬농소 성으로 남게 했다.
프랑스 조각가의 벽난로 밑 부분에는 앙리 2세와 까트린 드 메디시스의 이니셜을 새겨 놓았다.
궁금한 것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던 왕비 까트린의초상화가 왜? 왕의 연인인 디안의 방에 걸려 있는지 모르겠다.
남편 앙리 2세 왕의 사망후,
섭정 왕비가 된 까트린 드 메디시스의 서재.
서재옆의 녹색의 방.
까트린 드 메디시스의 집무실.
체어 강과 섬,그리고 디안의 정원이 보이는 멋진 전망을 가지고 있는 방이다.
까트린 드 메디시스는 디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디안 드 푸아티에 다리위에 웅장한 갤러리를 건축하도록 했다.
1577년 아들 앙리 3세의 대관식 축제 기간에 이 갤러리를 무도회장으로 처음 사용했다고...
그녀가 녹색방에서 바라 보았던 아름다운 정원과 체어 강의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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