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인 루아르 강 지역은
백년전쟁 중 잔다크가 영국군에 대승을 거둔 도시 오를레앙부터
남 서쪽으로 뚜르를 거쳐 엉제에 이르는 약 250km에 이르는 지역에
왕가의 성이 50여개나 모여 있는 고성지역이어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우리가 이번에 방문할 성은,
샤를 8세때 증축된 고딕 양식과 프랑수아 1세가 증축한 르네상스 양식.
이 두 양식으로 지어진 성을 볼 수 있으며,
역사의 풍파와 함께
프랑수아 1세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돈독한 우정이 남아 있는 앙부아즈 성이다.
1400년대 루이 11세에
반기를 들었던 앙부아즈 성의 귀족 루이스는
앙부아즈 성을 왕가에 헌납하는 조건으로 사형을 면하게 된다.
이 후 왕가에 귀속된 앙부아즈 성은
루이 11세부터 프랑수아 1세에 이르기까지 왕가의 성으로 사랑을 받았으며
루이11세의 아들 샤를 8세는
이 곳에서 태어났지만 성문의 문고리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로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왕비와 함께
테니스 시합을 관람하고 돌아오던 길에 성문의 문고리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고
몇 시간 뒤, 28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도 요절을 하였지만,
새로운 건축 양식의 도입등 그가 앙부아즈 성의 증축에 끼친 영향력은 컷다고...
샤를 8세는 앙부아즈 성을 증축하는데 이탈리아 건축가를 초빙하였고,
그리하여 이 성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르네상스를 도입한 건축물로서 프랑스 르네상스의 시발점이라는 역사적의미를 갖는다.
샤를 8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딸"브르티뉴의 앤과의 결혼으로도 유명한 왕인데
당시 결혼 풍습은 신부가 가지고 온 재산은 남편쪽으로 귀속이 되었다가
남편이 죽거나 이혼을 하면 다시 신부쪽으로 가지고 갈 수 있었다고...
앤은 결혼을 하면서
브레타뉴지역을 몽땅 가지고 시집을 왔기에 왕가에서는 아주 반기는 혼사였다.
후에,
샤를 8세의 아들4명이
모두 어린 나이에 사망을 해서 대를 잊지 못하게 되자
결혼 계약상 앤은
샤를 8세의 누이와 이미 결혼을 한 샤를의 사촌 루이12세와 다시 혼인을 하게 된다.
이 들의 결혼을 무효화하고서...
아마도
어떠한 경우가 되더라도 브레타뉴를 프랑스에 귀속시키려면
앤을 붙잡아야 했을테니 이런 계약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루이12세와의 사이에서도 아들이 없자
맏딸 클로드와 혼인한 사위 프랑수아1세가 대를 잇게 된다.
프랑스 르네상스의 대부라 불리는
프랑수와 1세의 왕위 계승으로 루아르 지역의 고성들도 전성기를 맞게 된다.
앙부아즈 성은 "앙부아즈의 음모"라는 사건이
역사적으로 종교 전쟁의 빌미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프랑수아 1세의 손자이자 앙리2세의 아들인 프랑수아 2세가
이 성에서 신교도들에게
납치를 당할 뻔했던 일이 벌어진다.
프랑수아 2세의 부인은 그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매리 스튜어트였다.
매리의 어머니는
당시 프랑스 최고의 권력 가문이자 구교의 중심인 기즈가문의 딸이 었는데
신교도들이
기즈 가문이 왕에게 힘을 못 쓰도록 왕을 인질로 잡아 납치하려 했던 것이다.
주모자들은 모두 붙잡혀 공개 처형되어 앙부아즈 성의 발코니에 목을 메 달아 놓았고
수 많은 사람들의 교수형이 한 달간 지속되었으며, 종료될때까지...
1,200여명의 신교도들이 마을벽에 목 메 죽었다.
이로인해 엄청난 시신이 부패하는 악취로 앙부아즈를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후에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 학살"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 사건이다.
정원의 한쪽에는 르네상스식의 조그마한 예배당이 있는데,이 곳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무덤이 있다.
원래 다빈치는 앙부아즈 성의 플로렌틴 성당에 묻혔는데, 프랑스 혁명중에 이 성당은 파괴되었고,
그 후 이 성당이 있던 자리에서 다빈치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되어 이 곳으로 옮겼다 한다.
언덕위에 자리한 성이라서 사면팔방 어디를 내려다 보아도 풍광이 훌륭하다.
프랑수아 1세의 상징인 불 도마뱀 문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잠들어 있는 곳도 다시금 바라다 보고...
본 궁의 3층에 왔어.
마지막 왕 루이필립이 살았던 여름 별장.
옆으로는 왕자와 공주가 살았던 궁이 있다네.
앙리4세때 부터 감옥으로도 이용되어
알제리의 민족주의 지도자 아브델카데르가 투옥되기도 했다한다.
쟈끄 앙드루에 디 쎄르소( Jacques Androuet du Cerceau)가 그린 앙부아즈 성의 상황을 그린 조감도.
1576년~1577년 당시의 성의 규모와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검은색이 현재 남아있는 건물이고,
붉은색 부분은 현재 멸실되고 없어진 부분이다.
우리가 관람한 성은 검정색으로 그려진 한 귀퉁이 부분만 돌아 본 것이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차창밖으로 보이는 성의 규모는 엄청나다...
고딕과 르네상스가 가미된 멋진 성...앙부아즈 성이 조감도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다면,
우리가 보아 온 어느 성보다도 웅장하고 멋졌을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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