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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or발칸/독일

2일차...쾰른 대성당.


로마 군대 주둔 지역이 도시로 성장한 피렌체(이탈리아),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처럼 독일의 퓌센,

로텐부르크, 뷔르츠부르크, 쾰른도 로마 군대 주둔지였다.

기원전 38년,

로마 군대에 점령되어 식민지가 되었던 시기로

식민지를 의미하는 라틴어 콜로니아(colonia)에서유래된 "쾰른(cologne)"

 8200만 독일 인구 중 네번째로 큰 인구 100만의 도시이다.

(베를린 300만 - 함부르크 180만 - 뮌헨 130만-  쾰른 100만-  프랑크푸르트 70만)

10~15세기 독일 최대의 도시로 번창하고,

중세에는 북, 서유럽에서의 수륙 교통,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하여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에 소속되었다..

현재는

교통의 요지로서 라인란트(Rheinland:라인강 지역)의 경제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도시이다.


"쾰른의 물"이라는 뜻의"오 데 콜롱" 프랑스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오 드 콜로뉴" 향수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비가 오넴...

비는 점점... 잦아들어 우산을 안 써도 될듯해서 고마운데,

첫날부터 영~ 상큼하지가 않네...

독일의 날씨는 거의 모든날이 이런 날씨란다.

이렇게 깊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우중충한 날이 많아서 시인과 사상가의 나라라고 한다고...

쾰른 대성당(Cologne Cathedral)은

동방박사의 유해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져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고딕 양식 쾰른 대성당은...

 1248~1880년까지 약 280년의 공사 중단 기간을 포함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프랑스의 고딕 건축물을 대표로 하는 아미앵 대성당(Amiens Catherdral)참고하여 지었으나

아미앵 대성당처럼 화려한 조각이나 장식은 찾아 볼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중

70대의 폭격기가 사용한 소이탄의 공습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나

이곳 역시 도시 복원 제일의 독일 답게

중세의 건축가와 장인들이 설계한 자료를 바탕으로 근대의 건축가와 장인들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복구된

건축학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성당으로 독일 최대의 고딕 양식 건축물로

1996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독일인들에게 쾰른 대성당의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또 있다.

대성당 건축이 마무리되어 가던 19세기 중반,

공사 비용이 모자라자 건축비 마련을 위한 복권을 발행,

기부금을 비롯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될 수 있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울름 대성당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쾰른 대성당의 157m의 두개의 첨탑은 쾰른의 랜드마크이다...




















14세기의 스테인글라스...




성내부를 장식하는 14-16세기의 스테인글라스.





뫼셔온 사진... 우리가 빠뜨린 "동방박사의 경배"

고딕화의 거장인 슈테판 로흐너가 그린 제단화로

대 성당에 보관중인 수많은 그림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고...


기적의 성모상

중세 유럽 십자가의 시초가 된 "게로 십자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들여온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십자가로 한때 이 십자가에 이유 없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자

게로(Gero) 대주교가

십자가에 성만찬 식을 치른 뒤 균열이 없어진 기적의 "게로의 십자가(GeroKreuz)".


이 곳에 모셔져있는 12분의 대 주교의 무덤중에 하나...




1164년 과거 이탈리아로 원정을 나갔던 대 주교 라이날 폰 다셀이 밀라노에서 가지고 온 세 동방박사의 유골함이 모셔져 있다.

이것을 가져오면서 대성당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중세 금세공품의 최고 걸작인 세 동방박사의 유골함.







성당을 나오는 길에 만난 좀 다른 분위기의 성당 벽화...천장과 기둥에 그려져 있었다.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 클라라 성당 소속이었던 것을 쾰른 성당으로 옮겨 온 클라라 제대는

양쪽 날개부분이 열리는 구조이다.



피에타